기대와 설렘이 공존하던 8월이 거의 끝나간다. 8월의 아름인 해외봉사단과 함께 한 일주일은 너무나 벅차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발대식과 사전교육>
내 인생에서 가장 설렜던 선서였다. 인도네시아에서 만날 사람들, 내가 하게 될 일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스무 명의 대학생 봉사자 중에 내가 있다는 사실도 너무나 감사했다. 현지에서의 주의사항과 할 일들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우리가 한국 대표로 파견되는 것이니, 자각을 가지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약간 긴장이 되었지만, 이내 우리나라에 대한 좋은 기억만을 남겨드리고 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하게 될 봉사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초심을 다시 한 번 다잡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건축봉사>
당차게 시작한 우리의 첫 봉사는 건축이었다. 건축 시작 전에 우리는 현장부터 살펴봤는데, 우리가 지어야 할 두 채의 집 중에서 한집은 이미 완공된 상태였다. 우리는 페인트칠부터 시작했다. 처음 하는 일이라 페인트가 흘러내리고, 온몸에 잔뜩 튀었다. 곧 요령이 생기긴 했지만, 천장까지 꼼꼼하게 페인트칠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팔도 아프고 몸도 아팠다.
앉아서 잠시 쉬고 있는데 옆에서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다. 이웃집 할머니였다. 저분은 누구시냐고 여쭈어보니 홈파트너라고 하셨다. 홈파트너 할머니께서 이웃집에서 신세를 지고 계시면서, 하루 종일 집과 우리를 계속 지켜보고 계신 것이었다. 집을 바라보는 그분의 눈빛에서 감사함과 설렘이 느껴졌다. 그분께는 얼마나 소중한 집일지를 생각하니, 힘들다고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때부터 더 정성스럽게 페인트칠을 했고, 살짝 다른 벽에 묻기만 해도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몇 시간 동안 열심히 칠한 만큼 페인트칠은 거의 다 끝났고, 다음 날부터 할머니께서는 계속 페인트가 튄 바닥을 열심히 닦으셨다. 그분의 행동 하나하나에 집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났다. 집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만큼 소중한 ‘우리 집’이 있는 것에 감사했다.
둘째 날 건축에서는 벽돌을 쌓는 일을 했다. 시멘트를 적당히 바르고, 벽돌을 올리고, 사이사이를 시멘트로 채우는 일이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벽을 만드는 만큼, 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래서 더욱 시멘트를 바르고 채우는 일에 더 신중했고, 집중해서 했던 것 같다. 가장 많은 생각을 했던 시간이었다. 먼 타국인 인도네시아에서 내가 쌓은 벽돌 한 장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지반이 될 이 땅에 내 땀방울이 스며있다는 것도 뿌듯했다. 분명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고, 내가 하는 일의 특별함과 함께 자부심도 느꼈다.
미약한 인력이지만 마을과 사람들에게 약간의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도 행복했다. 현장에 모여든 사람들이 증거였다. 아이들은 먼저 다가와 주었고, 사람들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우리를 봐주시고, 우리에게 시원한 마루까지 내주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서로 오갔던 웃음과 정은, 우리가 나이와 국경을 초월한 우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한국에서는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무표정이거나 언짢은 표정인데, 여기는 누구나 웃어주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먼저 인사를 건넬 용기를 주었고, 항상 웃으며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웃음이면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는 곳, 이런 경험을 어디에서 또 할 수 있을까.
<교육봉사>
가장 많이 고민하고 준비했던 교육봉사, 우리 조가 준비했던 수업은 클레이 종이탈 꾸미기와 클레이 작품 만들기였다. 일단 말이 통하지 않으니 설명할 수가 없어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도 주변의 선생님들과 해비타트 관계자분들이 우리를 도와주셨지만 역시 언어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통역이 있다는 말에 영어로만 준비했던 것이 후회되었다.
교육봉사인 만큼 아이들과도 가까이 있을 때가 많았는데, 의성어, 의태어, 인사, 바디랭귀지 말고는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거의 없다는 것도 너무나 아쉬웠다. 더 많은 언어를 알아가지 못 했던 것이 아직도 안타깝다. 그래도 다행히 아이들은 잘 따라와 주었고, 함께 귀여운 탈을 꾸미고 사진도 찍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클레이 시간은 조금 힘들었다. 아이들과 말이 통하지 않으니 통역해주시는 분 없이는 설명이 어려웠고, 우리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클레이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새로운 놀이에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고 흠칫 놀랐다. 나는 마치 내가 선생님이라도 되는 양 내 뜻대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싶어 했던 것인지. 부끄럽고 혼란스러웠다. 그 순간부터 아이들을 그대로 존중해주고 격려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들을 보는 시선이 바뀌니 보이지 않았던 아이들의 상상력이 보이고, 순수함이 보였다. 예상치 못한 큰 깨달음을 얻었던 순간이었다. 여전히 많이 남아있을 나의 편협한 시각을 빨리 바꾸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과 열심히 만들고 사진도 찍고 하니 순식간에 클레이 시간이 끝났고, 어떤 아이는 나에게 자기 작품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열심히 만든 작품을 누군가에게 선뜻 줄 수 있는 따뜻하고 티 없는 마음에 감동했다. 또 한 명의 어린 친구가 생긴 날이었다.
둘째 날은 아주 바빴다. 우리 팀은 실외 봉사로 ‘미니 운동회’를 준비했는데, 그중에서도 내 역할은 페이스페인팅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들어보는 붓이었고, 잘 하지도 못 해서 정말 간단하고 많이 부족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것마저도 웃으며 함께 해 주었다. 받고 나서 곧바로 지워버리지는 않을까 정말 걱정했는데, 우리가 벽화봉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아이들의 얼굴엔 내 그림이 남아있었다.
우리가 만든 아름인 티셔츠를 입고, 얼굴엔 서투른 내 그림이 남은 채로 우리를 배웅해주는 아이들의 모습은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이렇게 작은 것에도 고마워하고 즐거워하는 아이들과는 달리, 평소의 나는 화려하고 멋진 것에만 눈이 멀어 소중함을 잊고 산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이들에게서 오히려 훨씬 많은 것을 배우고 왔던 교육봉사였다.
<그리고, 나>
나의 8박 10일을 한마디로 표현해보려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단어는 ‘비채나’ 였다. 사실 비채나는 인도네시아에서 배탈에 시달리던 우리를 한 번에 낫게 해주었던, 한식당의 이름이다. ‘비우고 채우고 나누고’라는 뜻인데, 식당인 만큼 밥그릇에 비유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할수록 우리의 봉사를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봉사란 더 누리고 싶은 나의 욕심을 비우고, 그 빈 공간을 관심과 사랑으로 채우고, 그 채운 마음을 사람들에게 나누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행동의 따뜻함을 먼 인도네시아까지 가서야 깨달았다.
우리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깊은 유대감을 느꼈고, 정을 나눴다. 인도네시아의 어두운 이면에 마음 아파하고, 한국과 지구촌에 대한 애정도 깊어졌다. 많은 작은 것들에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봉사자가 아닌 관광객이었다면 느끼지 못 했을 수많은 감정들이었다. 그래서 나에겐 이 여름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많은 사람들과 이별을 해야 하는 시간, 계속 눈물이 났던 것도 그 소중함을 기억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해외봉사가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이유에 대해 조금은 답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너무나 행복했던 기억을 만들어준 아름인, 인도네시아. 이제 그 추억을 품고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먼저 웃음을 건네고, 따뜻함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와 함께 해주신 수많은 분들, 모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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